Dummy data. 주로 게임과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아 제품 상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 내부에만 존재하고 있는 데이터들을 의미한다. 사용되지 않은 데이터는 발매될 제품에서 제거해야 맞겠지만 간혹 내부에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발매되는 경우가 있으며,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의 내부에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고 일종의 역공학(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더미 데이터는 내가 관심있어 하는 또 하나의 마이너한 영역인데, 왜냐면 더미 데이터를 통해 본래 게임이 어떤 방향으로 개발되려 했는지에 관련된 숨어있는 개발 비화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부족으로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컨텐츠라던지, 기획했다가 폐기된 컨텐츠라던지 등등.
더미 데이터의 유형들을 보면 미사용된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가 있고, 좀 더 높은 레벨의 컨텐츠로 본다면 미사용된 캐릭터, 스테이지 등이 되겠다. 심지어는 개발자의 숨겨진 메시지가 더미 데이터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알고있는 더미 데이터 몇가지를 대강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내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장르인 음악게임에서의 더미 데이터는 주로 수록이 취소된 곡에 대한 데이터라 할 수 있다. 미수록된 음악, 곡과 관련된 그래픽 이미지, 게임에 사용될 채보 데이터 등등. 심지어는 모든 게 구성되어 있어 실제 게임에 사용될 준비가 되어있지만 판권 문제나 밸런스 등의 이유로 더미 데이터가 돼버린 사례도 있다.
펌프 잇 업 Prex3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BGA. 판권 문제로 결국 수록이 불발되었다고. 이 BGA에 사용된 리소스들은 약간의 변형을 거쳐 동 시리즈에 수록된 태양의 나라 라는 곡의 BGA에 사용되었다.
격투게임인 철권3에는 이상하게도 준의 초상화가 더미 데이터로 남아있었다. 준은 철권2 시점에서 스토리상 사망한 인물인데 어째서 철권3의 데이터에 남아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사례였다. 준이 사실 사망하지 않았다는 스토리라인을 기획이라도 했었던 건지.
메탈슬러그 5는 더미 데이터가 정말로 많은 걸로 유명한 게임이다. 개발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에 미완성의 느낌이 많이 나는 채로 발매가 되어버렸고, 결국 엄청난 양의 더미 데이터가 내부에 남아있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냐면, 전체 게임 용량의 반 정도가 더미 데이터인 수준.
쓰이지 않은 스프라이트들의 '일부'를 가져와본 것. 척 봐도 많지만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다. 저 중 몇몇개는 애니메이션도 구현되어 있다.
심지어는 보스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것들도 더미 데이터로 남아있다. 특이하게도 이 둘은 후에 나온 모바일 게임인 메탈슬러그 어택, 메탈슬러그 디펜스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위의 요소들이 전부 실제 게임에 구현되었다면 메탈슬러그 5는 3 못지않은 대작이 되었을지도.
앞서 말했듯이 더미 데이터는 대부분 역공학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법적인 문제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 별 건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는데, 비트매니아 IIDX에 사용된 일러스트의 원본을 얻기 위해서 해킹 툴을 이용해서 게임 데이터를 뜯어보고 있던 도중 아래의 그림을 발견했다.
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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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들 사이에 저 이미지가 껴있는 걸 보고는 되게 놀랐다. 게다가 검은 배경에 빨간 글씨. 제작사 측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대한 경고를 심어두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위 이미지를 봤을 때 느낌은 당연히 반성보다는.. 흥미로움이 더 컸다.
이거 말고도 DJMAX 트릴로지의 데이터 파일을 텍스트 에디터로 열어보면 제발 건들지 말아달라는 투의 개발자의 메시지가 담겨있던 것도 기억난다.
나의 더미 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꾸준하진 않지만 때때로 흥미가 생길 때마다 찾아보곤 한다. 친구들에게 몇번 설명을 시도한 적도 있지만 워낙 마이너한 영역이다 보니 이러한 정보를 찾아다 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해괴한 취미로 취급했던 적이 많았다.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딱 알맞는 위키가 하나 있다.
게임의 더미 데이터들을 찾아 정리해놓은 위키. 게임별로 구분되어 있고 어떤 유형의 더미 데이터인지에 대해서도 카테고리를 나눠놓은 등 정리가 잘 되어있어 찾아보면 꽤나 재밌는 내용들이 많다. 기억에 남는 건 개발자가 성적인 메시지나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데이터에 숨겨놓은 사례도 있었다는 거. 개발자의 울분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 들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