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주식회사ZUIKI(株式会社瑞起)라는 곳에서 DDR 25주년 기념으로 초기 DDR 기체를 미니 사이즈로 재현하는 프로젝트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크기는 원본의 1/5사이즈, 수록되는 게임은 초대 DDR, 2nd, 3rd로 세가지. DDR이라면 내게 있어 리듬게임이라는 것, 아니 그 전에 오락실이라는 것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해준 게임이고 그 게임의 초창기에 관한 추억 또한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희소성이 있을 것 같아 무조건 장만해야겠다 라고 생각했고, 결과물이 어떤 모습일지, 내부 소프트웨어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을지 여러가지 궁금증이 많았다.
그리고 공개된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일반 지원 43780엔, 선착순 300명, 500명에겐 각 41580엔과 42680엔.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제품의 디테일이나 추억이 어찌됐든 약 40만원이나 된다는 가격을 들었을 땐 고민이 앞섰다. 이게 정말 내게 필요한 걸까? 얼마전에 휴대폰도 새로 사서 지출이 컸었는데. 표기된 제품 사이즈를 보니 생각보다 커서 집에 둘 곳도 없을 것 같고. 여러가지 고민이 앞섰지만 펀딩이 시작되자마자 그런 고민을 언제 했냐는 듯 선착순 300명 안에 들어 특전 가격으로 지원했다. 아무래도 기념비적인 물건이라는 것, 희소성이 있는 물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 듯.
제품의 발송은 내년 여름 예정이라고 했으니 거의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셈. 때문에 매일같이 손꼽아 기다린다기 보다는 때가되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냈던 거 같다. 가끔씩 메일로 날아오는 소식들은 매번 확인해주면서. 소식은 주로 라이센스 곡의 추가 계약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난 DDR 초기 시절엔 DDR 2nd만 했었기 때문에 초대 혹은 2nd의 곡이 추가되는 소식에는 어떤 곡인지 인지를 했지만, 3rd의 곡이 추가되는 소식에는 무슨 곡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배송시기가 다가오던 도중 일반 판매가 결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는데, 이때는 조금 김이 샜다. 그래도 좀 더 싸게 그리고 더 일찍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지만.
그렇게 약 1년이 지나 2024년 9월. 드디어 순차적 발송 시작이라는 소식이 올라왔다. 프로젝트 설명으로 일본 내 배송만 지원한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배송대행 서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루만에 물건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보였지만 나는 바다를 건너와야 하기 때문에 초기 지원자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받은 물건. 상자는 저렇게 생겼다.
상자를 열면 나오면 'Are You Ready?'문구. 선곡 후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아나운서가 말하는 대사 중 하나.
구성품. 본체와 스테이지 유닛, 기기에 부착할 수 있는 각종 이미지들. 그리고 USB C to C 케이블이 동봉되어 있다.
기기 후면부. 전원을 연결하는 USB-C 단자, 헤드폰 단자, 스테이지 유닛을 연결하는 USB 단자, HDMI 출력 단자, 그리고 전원 스위치가 있다.
전부 조립하면 요런 모습이 된다. 난 DDR 2nd에 대한 추억만 있기 때문에 모든 부착물들을 2nd 버전으로 맞춰보았다. 뒤에 바 부분은 자석을 이용한 탈부착 방식이라서 플레이할 때는 분리하는 것이 편하다.
주변을 어둡게하고 찍어본 것. 기기의 조명 또한 원작의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DDR 2nd의 데모 화면을 녹화해봤다.
플레이하는 모습을 녹화. DDR 3rd에서 Butterfly (UPSWING MIX)의 더블 SSR 보면을 플레이.
HDMI 출력 시엔 이런 모습. 해상도는 1080p.
내부 소프트웨어는 이렇다. 가동 시 메인 메뉴가 나오고 여기서 초대 DDR, 2nd, 3rd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게임이 기동되는 방식. 게임의 버전은 모두 수정판이나 확장판이 아닌 모두 최초 발매된 당시의 버전을 이용했다. 메인 메뉴에서는 의외로 한국어도 지원한다.
본체 설정화면. 배경화면 표시는 본 게임에서 좌우 레터박스 부분을 비워둘지 혹은 이미지를 표시할지 여부. 뚜렷한 화면 모드는 기본 설정인 OFF로 설정할 경우 픽셀을 뭉개서 살짝 흐릿한 화면이 되는데 ON으로 하면 별도 필터링 없이 확대만 해서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ON으로 한 것이 더 맘에 들었다.
이건 각 게임에 대한 설정. 실제 아케이드 버전에서는 난이도 등의 설정을 번경하려면 기기 내부의 테스트 버튼을 눌러 테스트 모드로 들어가야하지만 여기서는 게임 내에서 테스트 모드로 가는 선택지는 제공하지 않고 게임에 대한 설정은 이렇게 제공한다.
게임은 의외로 에뮬레이션을 통해 구현되었다. 발매 전에는 DanceDanceRevolution X3 VS 2ndMIX때처럼 과거 작품을 재현해서 다시 만들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왜냐면 당시 수록된 모든 라이센스 곡을 재계약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게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 이런 경우 에뮬레이션 방식은 이용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에뮬레이션 방식을 사용하면서 게임에 수정을 가하는 것은 당시의 소스코드와 리소스에 손을 대야하는 등 매우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의 수정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라이센스 문제로 재생할 수 없는 곡은 아예 게임 데이터 내에서 무음으로 대체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해당 곡이 재생되어야 하는 상황엔 저렇게 오버레이로 메시지를 뿌려준다. 아무래도 게임 구현의 변경 없이 라이센스 관련 컨텐츠를 잘라내는 가장 쉬운 방법인 듯.
라이센스 미취득 곡을 선곡 시엔 플레이 도중에도 메시지가 계속 떠있기 때문에 성가시다.
그리고 원작에서 표시되던 인터넷 랭킹 화면도 그대로 나오는데 이 상황에서도 현재 개최되지 않는 랭킹임을 알리는 메시지를 오버레이로 표시해준다.
당시 초상권 문제가 있었던 아프로노바의 배경 이미지도 삭제됐다. 아래쪽에 Unavilable Image라고 뜨는 것을 보면 더미 이미지인 모양. 3rd PLUS버전에서 대체된 이미지를 사용해줬으면 더 보기 좋았을텐데.
그리고 또다른 수정사항. DDR 2nd에서 앨범 홍보를 위한 화면인데 아래부분에 검게 처리된 부분이 있다. TOSHIBA EMI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었던 듯. 오른쪽은 원작에서의 화면.
이외에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수정된 부분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에뮬레이션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이렇게 실시간 세이브 로드도 가능하다. 원하는 화면으로 바로 가거나 고득점을 노릴 때 빠르게 재도전을 할 수 있으니 유용하다.
스테이지 유닛은 USB 인터페이스로 돼있으며 PC에 꽂을 경우 게임 컨트롤러로도 사용 가능하다. 현재 서비스 중인 PC판 DDR인 DanceDanceRevolution Grand Prix에서도 공식 지원한다는 공지사항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PC에 연결하여 꽤나 격렬하게 사용해본 결과, 입력이 눌린 채로 계속 유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SNS를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현상을 겪는 사람이 있는 모양. 내부 구조도 알아볼 겸 해결을 위해 분해해봤다.
DDR 미니 컨트롤러의 내부 모습. 키보드에 사용되는 스위치, 그 중에서도 로우 프로파일 스위치를 이용했다. 축의 종류는 찰칵거리는 키감의 청축 스위치. 그리고 화살표가 그려진 패널 아래에는 마치 키보드 키캡처럼 십자 모양이 파여있어 이것과 스위치가 결합되어있는 구조. 입력이 눌린채로 유지되는 현상의 원인은, 패널과 스위치의 결합이 어떠한 이유로 느슨해져서 일부만 결합된 상태가 되면 패널은 제 위치로 돌아왔지만 스위치는 끝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 패널의 탄성을 위한 스프링도 별도로 장착돼 있는데 이것이 이 현상을 더 유발시키는 듯. 나 말고도 발생한 사례가 있으니 그렇게 드문 사례는 아닌 거 같다. 좋은 구조가 아닐지도. 패널을 완전히 꾹 눌러서 다시 결합시켜주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나의 경우엔 특정 패널에서 계속 현상이 재발했다.
혹시나 해결이 될까 해서 원하는 스위치로 바꿀 겸 스위치를 갈아봤다. 납땜이 되어있기 때문에 납을 녹여 제거하고 다시 납땜을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기본 설치된 스위치는 TTC사의 KS32인데, 규격이 같다면 다른 스위치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난 택타일한 키감을 선호해서 동일 모델의 갈축 스위치로 바꿔 달아봤는데 왜 청축을 기본으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키감이 싱거워졌다. 그래도 이쪽이 맘에 든다.
총평을 하자면 일부 라이센스 곡이 누락되고 컨트롤러 쪽에서 잡음이 있었지만 제품 자체는 마음에 든다. 외관적인 부분에서는 굉장히 공을 들였음이 느껴져서 당시의 추억을 되새기기엔 충분했다. 가격이 가격이다보니 단순히 가지고 놀기 위한 용도로써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DDR을 좋아하고 당시의 추억이 있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에는 시스템적인 개선을 위한 패치파일도 배포했던데 패치 시스템도 준비를 해뒀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사항. 이런 방식을 이용해서 라이센스 곡의 추가는 해주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