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nagureo - 20, november.
비마니 시리즈는 비교적 늦게 접했기 때문에 시리즈 초창기에 활약했던 나구레오의 곡을 그가 현역이던 시절엔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 20, november만은 어린시절에도 플레이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비트매니아가 들어온 적 없는 동네에서 비트매니아로 플레이 해봤을 일은 없을 거고 아무래도 bm98과 같은 시뮬레이터로 플레이를 한 듯.
내가 비마니 시리즈를 접하기 전 과거의 음악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나구레오에 관한 언급이 종종 올라오곤 했었다. 최초의 beatmania를 기획했던 비마니 시리즈의 아버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곡을 작곡한 사람, 리듬게임에서의 유로비트의 시작을 알린 사람, 현재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많은 곡들을 작곡한 사람 등등. 나는 그러한 글들을 통해 나구레오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5.1.1의 초살에 당황하고, R5의 어이없는 트릴에 좌절하고, 팝픈에 한국어 곡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다들 11월 20일에 나구레오의 생일 축하 글을 올리길래 나도 따라서 올리고. 나중에 비마니 시리즈를 접하고 나서 겪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비로소 그의 존재감을 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러한 경험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팝픈뮤직 16을 마지막으로 그의 곡이 대량 삭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커뮤니티의 반응은 '회사를 나간 후 다른 리듬게임을 제작했기 때문에 그의 곡을 삭제한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0, november가 삭제된 것은 많이 아쉬웠지만, 이후에도 매년 11월 20일에는 꾸준히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곤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내 기억으론 최근 몇년의 11월 20일에는 내가 가는 커뮤니티에 별 반응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유저들이 많이 교체되고, 저 곡과 그의 이름을 모르는 신규 유저들도 많이 생겨났을 것이기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낮아진 것.
나는 그의 근황이 궁금해서 트위터 계정을 찾아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계정을 찾아 들어간 순간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지막 글이 1월이며 그를 비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려있었던 것.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서 그의 과거의 글들과 보도자료를 좀 더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구레오가 코나미 퇴사 후 운영하는 Yudo라는 회사에서, 위와 같이 골판지 공예로 만든 건반을 이용하여 음악게임 컨트롤러 혹은 작곡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하는 'KAMI-OTO'라는 제품을 발매하려고 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국제 음악 박람회인 NAMM 2017과 도쿄 게임 쇼 2017에서 iOS 블루투스 키보드 위에 얹어 사용하는 프로토타입 1을 시연하고, NAMM 2018에선 자체 메인 보드를 이용한 프로토타입 2를 시연했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메인보드에 각종 기능을 담아 실제 신디사이저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던 모양. 킥 스타터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이나 2018년 5월, 프로젝트를 취소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2099889341/diy-cardboard-musical-keyboard-kit-kami-oto/description)
그런데 이 물건, 지금 시점에서는 모양새가 정말로 익숙하다. 누가봐도 닌텐도 라보를 떠올릴 것 같은 생김새. 하지만 라보가 공개되기 전부터 개발 및 프로토타입 시연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2년 전부터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보가 공개되고 난 후, 나구레오는 다음과 같이 트위터에 글을 게재했다.
큰 회사들이 약소 회사, 개인 크리에이터의 창의를 존중해야 하며 유사한 것을 발표할 때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터와 경영으로 두가지 면이 있지만, 제가 번 돈으로 직원이 매출을 늘려 마련해 낸 개발비. 예산을 줄여 아이디어를 내 모두가 만든 게 kami-oto입니다. 사진은 지난해 namm2017에서 며칠간의 전시동안 너덜너덜해졌지만 작동해준 프로토 타입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분합니다.
이러한 발언에 사람들은 '라보와는 구조가 전혀 다르다.', '골판지 피아노는 나도 어릴 때 만들어봤다'등의 이유로 거세게 비난했다. 선수를 빼앗겨 분한 심정이란 건 알겠지만 라보마저도 골판지 장난이라고 크게 비판받은 마당에 저러한 발언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던 거 같다.
위의 발언 이후로는 더이상 나구레오의 트위터는 갱신이 없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이 소식이 음악게임 커뮤니티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아 지금 알게된 것도 씁쓸했다. 말그대로 나구레오는 현재의 음악게임 유저들에게 완전히 잊혀졌고, 완전히 지나가버린 시대라는 걸 실감했다는 것 밖에.
181105 추가 :
나구레오 트위터를 다시 확인해본 결과 1월에 올려져 있던 저 2개의 트윗이 삭제되어 있었다. 절묘하게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이후 얼마 안 가 사라진 것.